목사님도 세금 내시죠?

 

성직자의 사회 신뢰 회복 통로

최근 들어 교회가 목회자 납세 문제로 세간의 뜨거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정확히 말하면 목회자의 소득세 납세에 관한 논란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교회가 사회로부터 불신을 받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파하는데 박해를 받는 상황도 아닌 현실 속에서 이러한 교회에 대한 불신은 세상 속에 들어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다른 이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하는 교회가 오히려 세상과 구별된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 ‘빛’과 ‘소금’으로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그것을 행함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교회나 목회자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마땅히 해야 할 것이다. 세금의 속성은 ‘국가’라는 공동체가 운영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공동체 구성원인 국민들이 분담하는 비용이다. 따라서 내가 비용(세금)을 분담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그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 즉,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경우에도 결과적으로는 다른 누군가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해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자발적으로 타인을 위한 배려를 일반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할 때 세금납부는 내가 세금을 납부하지 않음으로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부담할 배려를 사전에 내가 부담하는 것이 된다. 즉, 우리가 보통 말하고 행하는 사랑이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이라면 세금납부는 ‘소극적인 사랑의 실천’이다.


일반인들에게 구입은 고사하고 유지비조차 부담스러운 호화 주택과 고급승용차를 사용하는 일부 목회자들로 인해 공중파방송과 일반인들은 고소득자로 추정되는 목회자들이 소득세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교회와 목회자를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세법에 의하면 소득이 많은 사람은 많은 세금을 내고, 소득이 적은 사람은 세금을 적게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군다나 소득이 일정수준(면세점)이하인 경우 세금납부를 면제할 뿐만 아니라 2008년부터는 연간 가구당 소득이 1,700만원 이하인 경우 국가가 장려금(근로장려제세)을 지급하므로 소득이 적은 사람은 세금 납부부담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가로부터 장려금을 받는다. 목회자들로부터 소득세를 거두어도 금액이 얼마 되지 않을 터인데도 목회자세금납부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단순히 목회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거두어 들여야겠다는 관점은 분명히 아니다. 사회가 목회자를 성직이라고 특별히 구별하여 생각하기보다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모두 동일하다고 생각하는데, 목회자들이 국민으로서 당연히 분담하리라고 생각한 국가의 운영비용(세금)을 분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목회자에 대한 신뢰감이 배신감으로 바뀌면서 관심을 증폭시킨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목회자가 세금을 납부한다고 해서 목회자가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은 없다. 왜냐하면, 목회자도 당연히 국가운영비용(세금)을 분담할 것으로 전제로 모든 제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받는 혜택은 나아지는 것이 없지만, 교회에는 분명한 유익이 있다. 그것은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나아가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에 무게가 실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에서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고 성도들이 재물을 각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나누고, 함께 떡을 떼며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행 2:43~47). 초대교회가 ‘그들만의 천국’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모두의 천국’을 이룰 때 주께서 천국의 지평을 넓히신 것이다.
현재의 한국교회는 온 백성의 칭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온 백성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면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희생이 필요하다. 요구하는 희생이 우리 신앙의 정조를 유린하는 것이 아니라면 설사 그것이 논리적으로 우리가 부담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 할 찌라도 기꺼이 손해를 볼 각오를 해야 한다.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회복해야 하는 우리는 선교에 도움이 된다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세금 납부는 우리의 의무가 아니라 선교를 위한 우리의 특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형식과 격식을 따지지 않으셨다. 그래서 하늘보좌에서 말구유와 십자가죄인의 위치까지 낮추시면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과 같이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려면 세금납부에서도 조건을 따지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실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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