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11월 15일 교회재정건강성운동본부가 주체한 2013년도 교회재정세미나 '가이사의 것을 하나님에게?'의 발제문 요약문입니다.

 

세금과 교회, 외길에서 마주치다

성경 속에서 찾아본 세금과 기독교 공동체의 역사

 

Ⅰ. 여는 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복지 세금 국가로 접어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공동체가 지녀야 될 세금에 대한 바람직한 입장을 정리해 보고자 함이다. 복지 세금 국가란 복지 수요를 세금으로 조달하는 형태의 국가재정 상태를 의미한다. 2014년도의 경우 우리나라의 세입액은 230조 원으로 추산되고 이 중 복지 지출은 103조 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세금 1000만 원을 납부하면 이 중 400만 원 정도는 국가로부터 복지 예산(육아 수당, 출산 수당 등)의 명목으로 돌려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납세자는 종전의 세금에 대한 입장, 즉 국가에게 재산을 강제로 빼앗긴다는 시각에서 이제는 '정당하게 납부(세금)하고 합당하게 돌려받는(복지) 시대'로 시각이 변모하고 있다.

반면 기독교 공동체는, 목회자의 납세 여부를 둘러싼 논쟁처럼,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것이 마치 특권인 듯이 비춰지는 현실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기독 공동체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나라의 확장에 있는 것이다. 아울러 기독 공동체가 국가로부터 급여 생활자, 영리법인 등에 비추어 상대적·우월적 세금 대접을 받는 것이 과연 전도에 유익한지는 살펴볼 일이다.

 

Ⅱ. 세금을 둘러싼 정치권과 종교계의 갈등

세금의 역사는 인권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그나카르타의 주된 내용은 세금 조항이다. 같은 내용이 권리청원에서도 반복되고 있고 명예혁명에서는 "의회의 승인 없이는 과세할 수 없다"까지 발전하였다. 프랑스 인권선언(1789)에서는 현대 조세제도의 근간인 조세법률주의와 조세공평주의가 선언되었다.

1. 세금의 역사

세금의 존재는 국가가 인류 사회에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부족국가 시대에도 외부로부터의 적의 침략을 방어하고 스스로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부족 구성원들이 일정량의 곡식을 거두었다.

동양에서의 대표적인 세금은 조(租)·용(庸)·조(調)로 구분된다. 조(租)는 토지의 사용 대가로 국가에 내는 부담금을 의미하고, 용(庸)은 국민의 노동력을 국가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調)는 특산물을 납부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공물(貢物)이라고 한다.

2. 신약성경 시대의 세금

예수님 생존 당시의 세금을 살펴보면, 로마법에 근거하여 식민지가 부담하는 세금과 유대인 자치법에 따른 종교세(성전세)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의 직업은 세관장이었다. 즉, 예루살렘 성곽을 중심으로 그 성문을 출입하는 사람 또는 물건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였다. 같은 무렵에 삭개오가 등장한다. 당시 세제는 로마가 일정한 할당액을 이스라엘 세무 당국에게 부여하면, 세무 공무원은 그보다 20~30% 이상 징수하고 그 차액을 착복했다. 오죽했으면 세례요한도 "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마라"고 했을까(눅 3:13). 이래서 당시 이스라엘인들은 로마인보다 오히려 세리를 더 증오하고 악질적인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 시대에 군중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삭개오의 슬픔 모습도 보인다(눅 19:1~10).

한편, 유대 종교 자치세로 성전세(Temple Tax)가 있다. 예수님이 자기 집을 들어가는데도 성전세를 납부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세금관은 분명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니, 네가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서 그 입을 벌려 보아라, 그러면 은전 한 닢이 그 속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내어라(However, we don't want to offend them, …and pay the tax for both of us)."요즘 시대는 세관이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한편,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은 예수님을 조세 불복 운동의 주동자로 몰아서 처형할 목적으로 로마 식민지 정부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여야 하는지 떠본다. 이에 대한 대답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Give to Caesar whats belongs to him. But everything that belongs to God must be given to God)"이다.

현대말로 바꾸면, 세법에 따라 세금을 내라! 그리고 동시에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정확하게 납부하라는 것이다. 이 무렵에는 종교와 정부가 일치하던 제정일치 시대에서 종교와 정부가 분리되어 가는 제정분리 시대로 가고 있었다.

따라서 헤롯의 유대 정부에게 납부하는 소득의 십일조 세금이 과연 합법적이고 종교적으로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 그들도 고민을 하고 있었다. 왜냐면 그들이 납부한 세금이 유대가 아닌 로마 정부로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세금을 안 낸다면 로마에 대한 반역죄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어려운 문제를 예수님에게 물어서 그를 제거하려는 의도였다고 본다. 특히 바리새인의 눈에는 예수님이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치는 반(反)율법주의자의 지도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3. 중세시대의 성직자에 대한 세금 부과권을 둘러싼 쟁투

성직자에 대한 과세권을 국왕이 가지느냐 아니면 교황이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는 중세시대의 중요한 정치 문제였다. 십자군 전쟁 시절에는 성직자세가 부과되기도 했다. 이에 교황이 반발하여 성직자로서 국왕에게 세금을 납부하는 자는 파문을 하겠다고 했고, 이에 대응해서 당시 프랑스 왕이었던 필립 4세는 교황을 퇴위시키려고 까지 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성직자 및 교회의 면세 특권에 대한 시민의 저항과 반발 때문에 일어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1789년 11월에는 정부는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십일조는 폐지가 되었다. 그 대신 성직자들의 생활비는 국가가 책임을 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독일에도 영향을 주어 국가가 교회세를 징수하여 각 교단에 분배하고 있다.

 

Ⅲ. 기독 공동체의 세금 납세의무

정교분리 시대에서는, 싫든 좋든, 기독 공동체도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민주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재정이다.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세금이 있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사도행전 4장 34절에 표현된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세금)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복지)"고 본다.

이를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공화란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복지를 받는 자보다 복지 재원을 감당하는 자가 더 보람된 인생이 아닐까 한다. 그 이유는 하늘이 주신 달란트를 최대한 사용한 자이기 때문이다.

1. 국민개세주의 원칙

국민개세주의란 모든 국민은 적은 액수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면세 특권을 누리던 귀족층에게 세금을 걷기 위해 도입된 논리다. 현대에 와서는 소득이 적은 사람일지라도 조금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종전에는 일반 서민이 면세 혜택을 받고 있는 부유층에게 하는 구호였지만, 지금은 증세론에 시달리는 부유층이 서민층에 대해 조금이라도 세금 부담을 하라는 취지로도 들린다.

더군다나 복지는 결국 세금으로 할 수밖에 없다. 빚을 내서 하는 것은 국가 채무를 증가시켜 나라 경제를 더 어렵게 한다. 국민 대부분은 세금을 떳떳하게 능력껏 내고, 복지 혜택을 정당하게 받겠다고 하는데 정작 정부는 ‘증세 불가 약속’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 같다. 가장 합리적인 복지 조세 국가 모델은 구성원이 능력껏 일하고 얻은 모든 소득에 대해 공평하게 과세하고, 동시에 구성원이 필요한 만큼의 복지 혜택을 주는 사회다. 복지를 제대로 하려거든 세제를 올곧게 운영해야 한다.

2. 목회자의 납세의무

기독교는 조선시대 말기부터 의료·교육 사업을 통해 이 땅에 감동을 주었다. 6·25 한국전쟁과 산업화 및 민주화 과정에서 교회는 힘없고 쫓기고 굶주린 사람들을 보듬었다. 이를 눈으로 본 청소년들이 자라 기독교인이고 되고 사회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나 목사가 헌신적이고 희생적임에도 요즘 기독교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혹독하다. 교회 세습, 불투명한 교회 재정, 성폭력, 교회 권력의 타락 등이 주된 요인이다. 이젠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오히려 교회를 걱정하고 있다. 부끄럽고 통탄할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목회자가 교회로부터 받는 금액은 당연히 과세 대상 소득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교회로부터 받는 목회자 사례비는 그 명칭에도 불구하고 엄연한 소득이다. 그 많은 돈이 소득이 아니면 용돈인가. 모자(母子)지간 용돈도 큰 금액이면 증여세가 부과된다. 고용된 자가 아니다? 그래서 근로소득으로는 못 내겠다? 이는 교회 안에서나 할 말이지 교회 밖 세상에 대고 할 말은 아니다. 근로자인들 뭐가 어떤가. 목사는 예수님에게 고용된 자 아닌가. 특권 의식이다. 헌법은 특권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군대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군목은 세금을 낸다. 미국의 목사도 근로소득으로 세금을 낸다. 한국 목사와 미국 목사는 그 사역이 다른가? 부끄러운 주장이다.

둘째, 이중과세라서 안 된다고 한다. 교인들이 세금을 내고 난 뒤에 금액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일반인들을 보자. 월급 탈 때 근로소득세, 물건 살 때 부가가치세, 죽으면 상속세를 근로소득으로 받은 금액이 감당한다. 어설픈 주장이다. 이 세상엔 이중과세가 아니라 삼중 또는 사중 과세도 수두룩하다.

셋째, 더구나 종교 차원에서 보아도 이 논쟁은 교회에 유익하지 못하다. 첫째, 예수님조차 자기 집인 성전을 드나들면서 당시 유대법에 따라 성전세를 납부했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불필요한 논쟁과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목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세상과 쓸데없이 다툴 이유와 시간이 없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서 의사의 치료를 받듯 마음과 영혼이 아프면 교회에서 목사로부터 치유를 받는다. 교회의 본질과 목사의 기능은 분명 고귀하고 소중하다. 이를 통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금 때문에 비난을 애써 사서 들을 이유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납세자가 되면 금전적 손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여러 제도적 혜택이 부여된다. 통계상 90% 이상의 목사는 설사 세금을 부과하는 규정이 도입돼도 면세점 이하 수준으로 실질적인 금전 부담은 거의 없다. 그리고 세금 납부를 통해 교회의 재정과 집행이 투명해진다. 이를 제대로 하려면 모든 것이 정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했다. 정직하지 않은 교회나 목사가 어떻게 세상에 대해 바르게 살라고 말할 수 있는가.

 

Ⅳ. 닫는 글

결론적으로 기독교인은 매일 예수님에게 내가 누구인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물어보고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자이다. 존재와 당위라는 문제 의식을 늘 머리맡에 두고 사는 사람이다. 세상은 아직도 교회에 기대가 남아 있어서 애증 어린 비판을 하고 있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세금 납부는 최소한의 사회 규칙이다. 목사라고 예외일 수 없다. 예수님도 스스로 납부하셨다.

첫째, 적극적인 납세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선교나 전도의 관점에서 보면, 전 국민이 납세의무를 다하고 있는데 기독교 공동체가 일반 국민의 눈높이도 못 미칠 정도의 납세를 하고 있다고 하면, 그 동기와 원인 여부를 떠나서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둘째, 기독교 공동체의 적극적인 탈세 행위는 시급히 시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정 신고 등의 방법을 통해서 납세의무를 다하여야 하고, 국가권력도 한시적 기간을 부여하여 자정의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독교 공동체가 스스로 납세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그렇다고 해서 국가권력이 기독교 공동체의 수익이나 재산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세무조사를 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엄연히 비영리단체와 영리단체의 존재 목적은 구별되어야 하고 세무조사의 접근 방법도 달라야 한다고 본다. 미국 세법에서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미국 국세청이 교회에 대해 세무조사권을 행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넷째, 기독 공동체는 세법뿐 아니라 민법과 사법 등의 규정을 잘 준수하여서 교회 공동체(교회)의 업무 집행시 사회법과의 충돌과 마찰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한다. 특히 교회도 비영리 단체이니 교회 내에서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자는 그 행사시 더욱 민사법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목회자나 교회의 세금 납부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이 존재하지만, 그 대안을 선택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믿지 않는 자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해결되지 못할 사안은 없다고 본다.

 

안창남 /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원문보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5782

우리 교회 '재정 운영 원칙'이 필요하다!
교회 재정의 체계적인 관리와 교역의 투명한 운영을 위하여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수도권 어느 교회의 웃지 못할 소식 하나를 들었다. 내 월급 규모를 알고 난 후, 그 교회 담임 목사 월급이 삭감됐다는 내용이었다. 논리는 간단했다. 교회 규모면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교회인데 담임 목사 월급을 과하게 지출하고 있으니 삭감하는 게 옳다는 논리였다. 할 말이 없다. 교회 직원의 급여 기준도 없는 상황에서 재정 집행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답답했지만, 무엇보다 다른 교회의 사례 하나만을 접하고 감정적으로 바로 담임 목사의 월급을 삭감해 버리는 처리 절차에 어이가 없었다.

신도시 어느 한 교회의 재정 담당 안수 집사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았다. 역시 담임 목사의 사례비와 관련한 문제였다. 담임 목사 월급은 신도시에 거주하는 중산층 규모로 집행되어 왔으며, 몇 년째 동결되어 있다고 했다. 문제는 각종 수당이었다. 판공비, 안식비(안식년 대신 매년 한 달여 정도 해외여행 하는 전체 여비), 결혼한 자녀와 아내의 대학원 학비 등의 항목으로 흩어 놓은 금액이 엄청났다. 이 부분에 대한 수차례의 문제 제기와 각 수당을 사례비 항목으로 취합하자는 제안도 했지만, 돌아온 교회와 교우들의 반응은 냉소와 미움뿐이었다고 한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전임 부교역자 월급은 담임 목사 월급에 반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가족 인원수나 형편에 상관없이 담임 목사와 일정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담임 목사는 각종 수당을 받아서 월급이 적더라도 실제 가져가는 돈은 상당하다. 단순 수치적으로 전임 부교역자의 월급을 담임 목사 월급의 2분의 1 수준으로 암묵적으로 집행한다니 이 또한 어이없는 경우다.

가끔 다른 교회 담임 목사들로부터 식사 대접을 받을 때가 있다. 교회마다 다르지만, 한 끼 식사비 지원을 명당 2, 3만 원씩 해 준다는 곳이 있다. 얻어먹어서 좋기는 하지만, 교회 돈으로 꼭 이런 밥을 먹어야 하나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식사 대접해 준 목사가 부정을 했다는 말은 아니다. 교회 나름의 관례가 있어서 2, 3만 원짜리 밥을 살 수 있겠지만, 교회 재정으로 그렇게 비싼 음식을 먹는다는 게 참 맥없다.

어떤 교회는 주일 저녁이 되면 담임 목사 책상에 재정 장부와 함께 200만 원을 올려놓는다. 담임 목사가 일주일 동안 사용할 판공비 명분이라고 한다. 그 교회는 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회로 목회자들의 방문이 많다. 어려운 목회자와 신학생이 찾아올 때 판공비는 사용된다. 문제는 판공비를 사용한 근거가 없다. 오직 담임 목사의 양심에 맡길 뿐이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많은 교회가 재정 운영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선 투명한 재정 운영을 실현할 재정 운영 원칙이 필요하다. 우리 예인교회는 2006년 6월 1일 '재정 운영 원칙'을 정해 사용하고 있다. 교회 재정의 체계적인 관리와 사역의 투명한 운영을 위한 목적으로 재정 원칙, 회계 연도, 재무 제표, 장부 및 서류, 서식, 계정 과목, 월간, 연간 재정 보고, 재정에 대한 의문을 푸는 방법, 재정 담당자의 자격과 인원, 역할, 수입, 지출 승인 절차, 통상 비용 지출 한도, 증빙서 및 관련 서류, 재정 지급 방법에 대한 내용이 추려져 있다. 교회의 모든 재정 집행과 사전, 사후 처리 과정이 담겨 있다. 재정 집행에 필요한 몇 가지 확인 절차가 있어 번거롭지만, 하나님과 교회 앞에 드려진 헌금을 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좋은 기준이 되고 있다.

'재정 운영 원칙'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목회자와 당회원의 마음이다. 교회가 주님의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선 교회의 주인 된 자가 따로 없어야 한다. '재정 운영 원칙'에 입각한 재정 운영은 교회의 주인이 사람이 아닌 주님이심을 나타내 보이는 좋은 증거가 된다. 또한 이에 따른 그리스도인의 물질관과 재정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우리 교회의 '재정 운영 원칙'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부족함이 발견될 때마다 고치기를 반복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의견 조율을 통해 수정해 갈 것이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2014년도에 '목회자 월급에 대한 현실적인 기준'과 '목회자의 자발적 세금 납부'를 위한 기준을 논의하려 한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려진 돈이다. 투명하게 사용함에 소홀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교회 형편에 맞는 투명한 재정 운영을 위한 원칙을 세워 지켜야 한다. 교회 내에서 부정하고 왜곡된 돈 흐름을 막으면 사역의 건전성이 확보되고, 사역의 건전성은 새로운 활력이 되어 교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정성규 목사 / 부천 예인교회 

(원문보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5643

돈 좋아하는 교회, 회계감사는 제대로 받나
늘어나는 교회 '돈' 문제, 추락하는 신뢰도

 

우리 사회는 모두가 부자가 되려고 혈안이지만, 정작 부자를 신뢰하지는 않는다. 부자들이 돈을 정당하게 모으지 않고, 모은 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부자들이 윤리와 법에 어긋나는 방법을 교묘하게 총동원하여 돈을 모으려다 법의 제재와 심판을 받곤 한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는 게 아니라 "개같이 벌어 개 같이" 쓰고 있다. 그래서 지탄을 받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아픔은 교회를 향한 사회의 불신이다. 이러한 현상이 교회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그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은 '돈'이다. 최근 10여 년간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돈'과 관련된 사건이 부쩍 늘어났다. 아마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후 생긴 모든 돈 관련 사건의 몇십 배가 넘을 것이다. 그러한 사건들이 법정과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서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금 사회는 교회를 '부자' 바라보듯 불신하고 있다.

그 바람에 전도가 어려워졌고 그동안 관습적으로 사회가 인정해 주던 '배려'가 '감시', '견제'로 돌아서고 있다. 심지어 '안티'도 늘어나고 있다. 교회를 단순히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교회들은 사실 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규모가 크다 보니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느낌을 줘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건강한 교회들에게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를 이 꼴로 만든 건 대부분 규모가 큰 부자 교회이거나 부자들이 많이 나가는 교회다. 특히 자기 왕국을 건설하고 기업의 총수처럼 교회의 모든 의사 결정권을 독점하는 '개척' 목회자들이 이끌어가는 교회들이다.

정년까지 연장하고, 자식에게 담임목사직을 세습하고, 교회 돈을 횡령하다 들켜 법정과 감옥을 들락거리는 작태가 교회를 이익집단으로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고 있음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고도 수염을 기른 초췌한 모습으로 '고난받는 의인' 행세를 하는 뻔뻔한 모습에 비신자들은 더 이상 교회를 교회로, 복음을 복음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규모가 작은 교회 중에도 이러한 교회를 모델로 삼고 열심히 닮아 가고 있는 교회와 목회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사회가 교회를 불신하는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는 교회를 싫어한다. 부자 교인을 좋아하는 교회, 고액 헌금자를 좋아하는 교회에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돈이 많은 교회를 싫어한다. 몇백억 원, 몇천억 원을 이웃 사랑이 아닌 호화로운 건물을 짓는 데 쓰는 교회를 싫어한다. 사람들은 돈을 잘못 사용하는 교회를 싫어한다. 어떻게 재정을 관리하기에 담임목사가 몇십억 원, 몇백억 원을 횡령할 수 있단 말인가? 동창회 수준도 못되는 회계 관리로 교회 재정을 관리하는 교회를 누가 믿겠는가?

남한산성 몇 평짜리 작은 방에서 여생을 검소하게 묵상하며 살다 하나님나라로 가신 한경직 목사님의 삶을 부자 목사들은 배워야 한다. 그동안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교회 돈 챙겨 먹고 호화롭게 살고 있는 부자 목사들은 이제라도 목회와 교계 활동을 그만 두고 즉시 물러나야 한다. 그 돈 싸 들고 이 땅을 아예 떠나거나, 최소한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에서 300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이사해 조용히 살아가기 바란다. 그 일에 동조하며 떡고물 나눠 먹은 장로들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더 이상 돈 좋아하는 모습, 돈 자랑하는 모습, 엉성하게 돈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 줘서는 안 된다. 성도가 피땀 흘려 마련한 헌금은 그에 걸맞은 데에 바른 철차를 거쳐서 투명하게 사용돼야 한다. 이게 안 되니 이젠 타율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모든 개교회가 외부 회계 기관으로부터 매년 회계감사를 받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나 교단도 그런 교회만 '법적인 교회'로 인정하고 지원과 혜택을 줘야 한다. 교회 바깥의 모든 기관이나 단체는 이미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이의용 / 국민대학교 교양과정학부 교수·기윤실 이사

 

(원문보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5355

 

교회가 누리는 세제 혜택 타당한가
교회 재정 투명성 강조하여 종교인 과세 요구하는 사회의 시각 변화에 대응하여야

 

목회자, 성직자, 종교인 등의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과세하는 내용이 2013년 8월 정부 세제 개편안에 포함되기까지 여러 논란이 있었고, 이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동안 종교의 사회적인 역할과 종교 본연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국가는 분명 영리법인과 달리 종교 단체를 존중해 주어야 할 이유가 존재한다. 교회 자체 내에서 목회자와 성도 다수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종교인 및 종교 단체를 무엇인가 달리 대우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소득세 과세 논의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교회를 둘러싼 최근의 소득세 과세 논쟁은 논의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미 교회가 받고 있는 세제상 혜택에 대한 부각과 몇몇 교회의 부정적인 언론 보도가 결합되면 부가가치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여러 세법상 혜택 축소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최근 복지 재원 마련과 관련하여 비과세 및 감면 축소가 논의되면서 더욱 그러하다. 재산세의 경우 종교 단체에 대한 비과세 및 감면 금액의 규모는 2007년 411억 6100만 원에서 2010년 1127억 1700만 원으로 약 3배 정도 비과세 및 감면 금액이 증가한 바 있다. 이것이 사회적 이슈가 된다면 종교 단체가 받는 비과세 및 감면에 대한 전면적인 타당성 검토가 요구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러한 종교 단체의 세제상 혜택에 대한 것은 교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종교 단체 세제상 혜택이 교회에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 단체에 대한 부가가치세상 면세 혜택, 종합부동산세 혜택 이외에도 종교 단체 출연재산에 대한 상속세 혜택, 법인의 기부 관련 종교 단체에 대한 지정 기부금 단체 인정, 개인의 기부 관련 종교 단체에 대한 지정 기부금 단체 인정 등 종교 단체와 관련하여 여러 세제상 혜택이 있다.

2012년 3월 기준으로 불교, 개신교의 경우에는 단체 수가 각각 265개, 232개인데 반해 천주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 등은 단체 수가 각 1개씩이다. 이들에게 모두 위의 세제상 혜택이 주어질 수 있다. 그런데 개신교의 교회 숫자로 보면 7만 7966개인데, 각자 교회의 재정 상태가 다르고 세금을 바라보는 교회 목회자와 성도의 대응 역시 다양하다. 소득세 과세 논의에 대한 다양한 입장 표명에서 보듯 세제의 변화에 대해 교회 내에서 동일한 목소리를 이끌어 내기는 쉽지 않다.

종교인에 대한 과세 논의는 소득 있는 곳에 과세가 예외 없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교회 내 여러 의견의 대립이 있었고, 신학적인 입장, 과세에 따른 다른 부작용을 걱정해서 과세를 부정적으로 보면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꼼수로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교회가 사회에 끼치는 여타 선한 영향력에도, 세금이라는 이슈는 교회가 무언가 특혜 집단이며 탈세의 온상인 것처럼 오해받게끔 한 것이다.

교회 재정을 어떻게 운영하여야 하는가는 개교회 입장에 따라 달리 이야기할 수 있다. 개척 교회로서 세금 문제 이전에 기본적인 교회 운영조차 어려운 곳도 있고, 대형 교회로서 보유한 자산을 둘러싼 여러 세금 문제가 항상 걸려 있는 곳도 있다. 교회 안에서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세리의 모습 때문에 세무 행정과 세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현재의 세금 논쟁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한다. 교회 밖에서는 현재 한국교회 일부가 보이는 병리적 현상에서 과거 유럽 종교개혁 시대의 종교 권력의 부정적인 모습을 끄집어내려는 시도도 존재한다.

교회 밖의 교회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비롯된 오해도 있지만, 사전에 오해를 없앨 교회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교회 재정 투명성이 강조되는 것도 이러한 시각의 변화에 대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만의 문제가 아닌 종교 단체 전반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큰 기대에 비례해 교회 문제가 더 부각되는 측면도 있다. 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지속해 끼치기 위해서는 종교인 과세 문제에 대해 전략적인 접근과 문제 인식이 필요하다.

일부 교회의 재정적 문제나 사회적 물의는 전체 교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과 교회 스스로 종교를 팔아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그 자체의 본질에 충실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려야 한다. 세금 문제에 대한 교회의 일부 부정적인 반대 여론은 단순히 세금을 덜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 과세로써 기독인 및 기독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타개하려는 시도를 반대하는 경우일 때가 많다. 이러한 것을 세상에 전할 나름의 논리나 설명이 필요하다. 교회 밖의 시각에도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교회 재정을 교회 내에서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도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지혜가 세제 개편 시 교회에 추가적인 부담이 되는 내용의 개정이 되지 않도록 조정할 뿐만 아니라 설사 개편이 되더라도 교회에 다른 추가적인 부정적 조치가 취해지는 것을 막는 방법이 될 것이다.

 

박훈 /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목회자 납세는 시대 흐름이자 사회적 요구  
'목회자=성직자'가 납세 반대 근거 되면 안 돼


지난 8월 8일, 기획재정부는 2013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 부분은 2015년부터 종교인의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함으로써 목회자에게 과세한다는 대목이다. 비과세의 혜택을 받고 있는 종교의 영역도 조세 형평성의 관점에서 볼 때 더 이상은 특별한 영역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엿보인다. 그러면 이제 종교인 납세, 특히 목회자 납세에 대한 문제는 이제 종결될 수 있을 것인가?

목회자의 납세에 대한 논쟁은 1990년대 초반부터 사회적 차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2012년 3월에 기획재정부 장관의 특별한 언급이 있은 이후부터 목회자 납세는 교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지난해와 최근까지 이루어진 목회자 납세와 연관된 세미나와 공청회가 적지 않았던 것은 이를 잘 반영한다. NCCK 목회자납세연구위원회는 "한국교회와 목회자 납세"를 주제로 공청회(2012. 7. 5)를 개최하였고 경제정의실천연합이 개최했던 토론회(2013. 3. 21)의 주제는 "종교인 및 종교법인 과세의 쟁점과 개선 방안"이었다. 그리고 목회자세금납부대책연구위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가 개최한 "2013년 목회자 세금 납부 대책 연구" 공청회(2013. 6. 20)도 있었다.

목회자 납세와 연관된 논쟁은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목회자 납세 반대론(반대론)', '목회자 납세 찬성론(찬성론)', '목회자 납세 신중론(신중론)'이 바로 그것들이다. 반대론은 목회자의 소득을 근로소득이 아니라 사례비로 생각한다. 목회자의 소득을 근로소득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은 목회자가 일반 근로자와는 다르게 성직을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목회자가 납세할 경우 이것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성직의 의미와 소명에 근거한 목회직의 특수성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찬성론은 목회자의 소득을 사례비가 아니라 근로소득으로 본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강조한 만인제사장설에 의하면 목회직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다른 직업들도 모두 성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목회자와 일반 직장인 사이에는 직무의 구별이 있을 뿐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소명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신중론의 입장을 살펴보자. 이 입장은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하고 있고 성직이라고 하는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리고 이것은 목회직이 광의의 차원에서는 일반적인 근로의 의미를 가질 수는 있지만 목회직은 특별히 영혼 구원의 사역에 집중한다는 차원에서 일반의 다른 직업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별이 목회자의 납세를 면제시켜서는 안 되며 목회자의 납세가 하나님이 부여하신 성직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2015년부터 시행될 종교인 세법개정안은 완벽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목회자의 납세 실시에 대해 기독교 내부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없지 않다. 비판의 출발점은 목회자 소득의 성격을 근로소득이 아니라 기타소득으로 분류하는 데서 나타나고 있다. 목회자의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할 경우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조세 형평성은 실현되기가 거의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필요경비 80%를 인정하는 기타소득자는 동일한 금액을 수령하는 근로소득자와 비교할 때 근로소득세의 1/10에 불과한 세금을 기타소득세로 부담하며, 이러한 결과는 과세 형평성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정부가 의도하는 세입 기반 확충에도 미흡하다. 뿐만 아니라 종교인에게는 명목상의 기타소득세를 부담함으로 국민적 납세의무를 다하였다는 면죄부를 부여하고, 다른 직종의 근로자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부여함으로 국민 공동체 화합 차원의 걸림돌이 된다('종교인 기타소득 과세 예정 2013년 세법개정안에 대한 우리의 입장' 중에서)."

결론적으로 목회자 납세는 이제 시대의 흐름이자 사회적 요구의 문제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목회자들은 교회의 성도들에게 모든 직업 - 목회직을 포함한 - 이 갖는 성직의 의미에 대해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직업은 생계유지만을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어 가는 거룩한 수단이다. 목회자가 성직자라는 것이 목회자의 납세의무를 반대하는 이론적 근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생계유지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의와 기쁨과 평화를 위해 오직 헌신하는 목회자들이 있을 때, 거기에서 비로소 목회직은 성직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2015년까지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 동안 개정안의 보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논의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공공선의 실현에 실제적으로 기여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노력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고재길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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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4879

헌금은 투자가 아니다
재정 투명성 위해 헌금에 대한 기득권·소유권 버려야...동시에 적절한 제도 뒷받침 필요


예전에 다니던 대형 교회에서 관리 집사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루는 집사님께서 별관 어떤 방에 형광등이 다 켜져 있길래 들어가 봤더니 몇몇 권사님들이 모임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래서 권사님들께 "전기세가 많이 나오니 불필요한 조명을 꺼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내가 여기 내는 헌금...이 얼마인데, 이깟 불 좀 켜 놨다고 잔소리냐"라고 되레 핀잔을 주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 개운치 못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나였더라도 누군가가 간섭한다는 게 불쾌해 그런 식으로 감정을 표출했을 것이라는 '자체 심리 시뮬레이션' 결과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주위 사람들과 나누면서 교회에서 헌금을 둘러싼 욕망이 여러 가지 모양새로 방치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최근에 출석 교회에서 회계 결산과 관련된 일을 맡게 되면서, 종교 법인의 회계 처리와 관련된 논문을 찾아본 적이 있다. 논문을 찾다가 기독교 교리가 학문의 정교한 언어로 표현된 구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바로 종교 법인 회계에는 사적 소유에 속하는 지분(Equity)이 없다는 교회 회계의 기본 가정이었다.(1) 어떤 책에서는 종교 법인의 자원 조달은 교인들의 헌금, 기부금 등에 의해 이루어지며 자원 제공자들은 제공한 자원의 대가로서 특정한 경제적 효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며 기업회계와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설명했다.(2)

기업회계에서 자기자본(Equity)은 회사의 진짜 주인이 가지고 있는 자기 몫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자기자본을 갖지 않는다는 기본 가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곧 교회의 재산이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교회의 재산은 '하나님의 소유물’이라는 진리와도 맞닿아 있다. 이 개념을 더 확장시켜 보면 교회의 재산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측면을 설명해 낼 수 있다. 교회 재산이 그 누구의 소유가 아닌 것처럼 교회의 주권 또한 그 누구에게도 종속될 수 없고 철저하게 하나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를 망각할 때가 많다.

내 손을 떠나 드려진 돈은 내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교회 시설물을 관리하는 청지기에게 내가 쓰고 있는 교회 별관 형광등 전기세를 내가 낸 헌금으로 충당하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헌금을 얼마 냈다고 어떤 효익과 권리를 보장받고자 함은 자신이 헌금을 낸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여 교회 지분을 취득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지분을 취득한 사람은 적절한 투자 수익을 보장받으려 한다. 이것은 곧 자본주의 논리이다. 교회에서는 투자 수익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돈 자체를 추구하는 날것이 아닌 보다 세련되고 교묘한 방식으로 우리 삶을 장악하고 있다. 목사님 설교 판단, 교역자 평가, 교회 내 시설물 이용, 봉사 부서 내에서의 자리다툼, 나아가 교회 내의 영향력 행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수익 추구 활동은 우리 주변을 광범위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회계학자들도 알고 있는 헌금과 교회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일까? 설령 우리가 그것까지는 몰랐다고 변론할 수 있다면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괜찮다고 자위할 수 있을까? 나는 그 교회 권사님들께서 관리집사님에게 그런 방식으로 핀잔을 준 이유가 단지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헌금과 교회의 참된 의미를 몰라서가 아닌 것이다.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간다고 소득의 십분의 일을 떼어 낸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교회에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특히 십일조 전통이 강한 한국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비교적 큰 금액을 헌금하기 때문에 헌금으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하는 결정에 대한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어떻게든 반대급부를 찾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따라서 큰 용단을 낸 만큼 교회에서 인정받아야 하고, 그것이 안 되면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목사님 말씀에 은혜라도 받고, 헌금을 낸 것보다 더 풍성한 물질적 축복이라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내 돈이 아깝지 않지!' 이것이야말로 교회에서 자기 지분을 찾는 그리스도인들 심연의 목소리가 아닐까.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이중적인 면모에 대하여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1~13, 개역개정)"

우리에겐 너무도 중요한 제물이 하나님께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심지어 유익하지도 않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헌금을 내면서 "소중한 것을 드리오니…"라며 한 조각의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남았다면 하나님 앞에 자복하여 회개하여야 할 일이다. 자기가 낸 헌금에 대해 모종의 대가를 바라는 한국교회의 불편한 진실은 헌금을 모으는 것에 치중했던 한국교회의 어두운 이면이다. 사실 헌금을 낸다는 말 자체가 틀렸다. 내가 가진 것은 원래 하나님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설교와 가르침도 필요하지만, 문제 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규범도 필요하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경우 매주 확인 도장을 찍는 기명식 헌금 봉투가 아닌 무기명 헌금 봉투를 사용하고 있다. 헌금 낸 사람을 주보에 싣는 일도 물론 없다. 다만 소득공제를 희망하는 성도들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기입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는 헌금이 하나님과 개인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지 누구에게 드러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교회 방침에 따른 것이다.

교회 행사를 치를 때에도 무기명 후원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행사에 대한 후원자의 불필요한 영향력 행사를 배제할 목적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이것이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성도들이 설령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헌금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 다른 성도들의 헌금과 섞여 내 것을 분간할 수 없게 되고, 종국에는 하나님의 것이 되어 드려지는 참된 봉헌 시간을 매주 경험하게 하는 것은 건강한 교회 재정의 튼튼한 초석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 그와 동시에 적절한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재정 관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헌금을 내는 순간부터 바로 세워 나가야 한다. 교회가 내부적으로 투명한 재정 관리를 추구하고 있을지라도, 그 이면에 성도들이 자기 헌금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득권과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면 재정 관리의 기초가 바르게 구축될 수 없다. 교회 재정의 투명성과 책무성은 교회 재정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효섭 / 삼정회계법인 회계사


각주
(1) 조현선·전수영, <종교 법인 회계 및 재무 보고 설정에 관한 실증적 연구>, 회계 정보 연구, 2002
(2) 이동규, <비영리회계>, 형설출판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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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사역자의 소득과 책무  
사역자의 재정적 책무, 비용뿐 아니라 소득도 증빙...목회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


전임 사역자란 교회나 선교 단체, 혹은 캠퍼스 사역 단체 등의 기독교 기관에서 전임으로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기관에서 비슷한 일을 한다고 해도 만약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라면 사역자라는 말을 쓰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전임 사역자들이 비록 매달 일정한 금액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일반 기업에서 봉급을 받는 것처럼 일을 한 대가라기보다는 전임 사역을 하는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공동체의 후원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여기에는 교회의 목회자, 선교 단체에서 일하는 선교사, 학생 단체나 그 밖의 기독교 기관에서 일하는 간사 등의 사역자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사역자들이 자기가 속한 기관에서 하는 일 이외에 다른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과외의 활동을 통해서 소득이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소득에 대해서는 반드시 자기가 속한 기관에 알리고 그 소득의 사용에 대해서는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이것은 전임 사역자의 재정적 책무에 해당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사역자의 재정적 책무하면 사용한 비용에 대해서 증빙을 갖추는 것을 의미하는 줄 알지만 비용만이 아니고 소득에 대해서도 책무가 있는 것이다.

최근에 선교 쪽에서 이런 부분에 여러 가지 혼란이 생기고 있다. 전통적으로 선교사 하면 직업을 가지지 않고 선교지로 가서 직업과 상관없이 교회 개척 등의 사역을 하는 선교사를 말했다(1타입이라고 부르자). 하지만 이런 선교사가 갈 수 있는 지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통적인 선교사들이 비자를 받을 수 없는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직업을 가지고 비자를 해결하는 선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다(2타입이라고 부르자). 동시에 본국에서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있다가 선교사가 되어 선교지로 가는 전문인 선교사도 점점 늘고 있다(3타입이라고 부르자). 그런가 하면 선교 단체에 소속된 선교사는 아니지만 해외에 나가서 직업을 가지고 살며 현지인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4타입이라고 부르자).

위에서 말한 4타입은 선교사가 아니라 선교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요리를 하는 사람과 요리사를 구분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 것이다. 4타입은 앞에서 정의한 전임 사역자가 아니므로 이들에게 재정적 책무를 물을 필요가 없다. 그 말은 자신이 버는 돈을 마음대로 쓰면 된다. 하지만 2타입이나 3타입의 경우는 그야말로 전임 사역자이므로 자신들이 받는 일정한 소득 이외의 소득에 대해서는 재정적 책무를 이행해야만 한다.

일전에 선교사의 재정적 책무 관련해서 어느 기독교 병원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의료 선교를 열심히 하고 있는 병원장님이 강의 후에 오셔서 질문을 하셨다. 의료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사람이 선교지에서 버는 수익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그 분이 자신을 선교사로 생각한다면 3타입으로 인정하고 반드시 재정적 책무를 이행해야 할 것이지만 그 분이 만약 자신은 선교사가 아니고 그저 해외에 있는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선교를 하는 사람이라면, 즉 4타입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재정적 책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씀을 드렸다. 설명을 듣고 병원장님은 오랜 고민이 해결되었다면서 좋아하셨다.

재정적 책무의 문제는 비단 선교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교회를 포함한 일반적인 기독교 기관에서 일하는 모든 전임 사역자들은 모두 적용되는 기준이라고 생각된다. 사역자는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책무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고 돈에 관해서는 묻지 말라고 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다.

삼상 12:3~5을 보면 사무엘이 사역을 마치면서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일종의 고별 설교인 셈이다. 여기에는 자신이 권력이나 직무와 관련해서 부정적으로 재산을 모으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무엘은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선지자로 사역하는 동안 자신의 재정적 책무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사건이 3천 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에도 아마 전임 사역자의 재정적 책무는 매우 중요했던 것 같다.

선교사의 재정적 책무에 관한 강의를 어느 교회에서 했더니 강의를 들은 장로님 한 분이 강의 후에 내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원리를 목사님들도 아시나요? 제가 볼 때는 선교사들만이 아니라 목사님들도 적용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마 이것이 목회자들에 대한 일반 성도들이 갖고 있는 재정적 책무에 대한 기대인지도 모른다.

손창남 / 오엠에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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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4583

교회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려면  
재정 사용 현금보다 신용카드나 계좌 이체로...사례비·강사비 등에 소득세 원천징수하기 등등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은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중략)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 말씀은 필자가 매년 초 전교인 앞에서 교회 재정 보고를 할 때 먼저 읽는 말씀이다. 주인이 청지기의 일을 셈한다.(Give an account of your management)그리고 불의한 재물일지라도 충성스레 관리해야 일을 맡긴다는 것 같다.

필자의 교회는 오래전부터 교회의 헌금 수입과 지출을 표시하는 수지 결산서뿐만 아니라 교회의 재산(예금, 대여금, 적립금, 임차 보증금, 토지 건물, 비품 등)과 부채(차입금, 임대 보증금) 등이 표시되는 대차대조표까지 소위 복식부기로 만든 재무제표를 작성하여 전교인 앞에서 필자가 직접 설명을 한다. 보고된 재무제표는 일주일간 교회 게시판에 공고를 한다.

요즘 많은 교회의 교인들이 교회 재정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필자도 보수적인 전통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던 터라 과거엔 교회 재정의 지출 내역 등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요즘 교회의 재정이 과거보다 그 규모 면에서 커지고 교회의 소유 재산도 커진 것이 사실이다. 이젠 그 재산의 사용과 관리가 잘되고 있는지에 대한 교인들의 관심이 궁금증을 넘어 의구심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젠 교회 자산과 재정 운영에 관해서 청지기로서 잘 관리하고 교인들에게 더 나아가 외부에도 보고를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견은 점차 감소하는 것 같다. 이에 필자의 경험으로 몇 가지 도입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물론 많은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첫째, 물건을 구입할 경우와 사례비, 거마비, 심지어 선교비를 지급할 경우 현금 지급보다는 계좌 이체 또는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토록 한다. 또한 주일학교 또는 부서별 월 경비 지원 시에도 매월 사용 내역에 대한 회계 보고를 받도록 하고 가급적 증빙 자료 첨부도 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아직도 교회의 교인들은 계좌 이체로 헌금을 하기보다 현금(現金)으로 헌금하는 것을 선호한다. 자금 지출에 있어서도 현금 지출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요즘 종교인 소득에 대해서도 정부가 과세 여부를 검토하고 있으나 자발적으로 교회에서 지급되는 사례비 등에 대해서도 소득세를 원천징수하여 납부하고 사례비 등으로 외부 강사에게 지급되는 강사료에 대해서도 원천징수를 하고 통장으로 계좌 이체를 한다. 또한 교회에서 물품 구입 시 세금 계산서를 반드시 요구하여 부가세를 납부토록 하고 대금 지급 시에도 역시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통장 거래를 하도록 한다.

셋째, 최근에는 교회에서도 세법상 수익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커피숍이나 부동산 임대 등. 이런 경우 세무서에 수익 사업 개시 신고를 하여 부가가치세 납부 및 수익 사업 운영 시 발생할 수 있는 소득세 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넷째, 교회의 재산에 대해서도 교회 재정으로 구입한 재산뿐 아니라 기부받은 각종 재산에 대해서도 반드시 관리 대장을 작성하여 분실이 없도록 관리 보관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복식부기를 도입하여 자금 수지 결산서뿐만 아니라 대차대조표 및 운영 성과표까지 작성하면 교회의 재산 상태, 운영 성과 및 자금 흐름에 대한 더욱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천화 / 가립회계법인 공인회계사


(원문보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4381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서울 K교회는 연말정산 과정에서 성도들이 자신이 헌금한 내역과 연말정산 시 교회에서 준 자료가 맞지 않아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6000만 원이 넘는 횡령 사실을 확인했다. 또 다른 사건도 발생하였다. 어느 집사가 1000만 원을 헌금했는데 목사는 100만 원만 교회에 입금하고 나머지 900만 원을 자신의 통장으로 만들어 가지고 있었다. 당사자에게는 목사의 일방적인 뜻을 전화로만 전했다. 문제가 되자 일주일 뒤에 교회에 입금했다.

서울 C교회는 담임목사 재정 횡령 문제로 <교회문제상담소>에 방문하였다. C교회는 교회 주차장 매입 건으로 30억 원 대출이 필요해서 당회에서 결의를 하였는데 액수를 기재하지 않았을 뿐더러 일반 성도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담임목사는 필요한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대출을 받았고, 나머지 금액을 펀드에 투자했다. 그러다가 내담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서 담임목사에게 문제를 제기하였고, 담임목사는 원금과 이익금을 교회에 반환하였다.

교회 내 재정 문제 얼마나 심각할까?

<교회개혁실천연대> 부설기관인 <교회문제상담소>는 2002년부터 담임목사직 세습, 재정의 불투명성, 교회 운영의 비민주성 등의 문제를 대상으로 개교회 상담을 하고 있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9년간의 상담 내용을 전체 189개 교회 총 437건을 기준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재정 전횡', '행정 전횡', '부당한 치리 및 표적 설교', '교회 건축 및 매매', '목회자의 성폭력', ' 허위 이력 및 청빙 문제'가 주요한 상담 주제였고, 한 교회당 최소 1개 주제에서 최대 6개의 복합적인 주제를 가지고 상담했다. 그중에서도 재정 전횡이 98건(53.0%), 행정 전횡 79건(42.7%), 부당한 치리 및 표적 설교 71건(38.4%), 교회 건축 및 매매 38건(20.5%), 목회자 성폭력 27건(14.6%), 허위 이력 및 청빙 문제 24건(14.6%), 설교 표절 및 이단적 설교 12건(6.5%), 교회법 상담 9건(4.9%) 순으로 나타났다. 조사를 통해 개교회에서 발생하는 문제 중 단연 높은 것은 재정 전횡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교회별 주요 상담 주제 (복수응답, N=185)

더구나 주요 상담 주제별 연도별 추이를 살펴보면,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되었던 '재정 전횡'의 경우 연도별로 계속적으로 증가했고, 교회 규모가 커질수록 전체 상담 유형에서 재정 전횡이 차지하는 비율이 컸다. 100명 미만 27.8%, 100~500명 28.5%, 500~1000명 31.1%, 1000명 이상 32.5%로 나타났다. 즉 재정 전횡은 갈수록 더 많이 발생하고, 교회 규모가 클수록 재정 전횡의 문제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이 표본을 한국교회 전체라고 할 수는 없지만, 9년간 지속적인 상담 내용을 분석한 결과 속에서 어느 정도 한국교회의 재정 문제를 엿볼 수 있겠다.

수많은 교회 상담을 접하면서 느끼는 것은 재정 전횡과 행정 전횡은 늘 함께 간다는 것이다. 교회 일부 기득권 세력이 교회를 좌지우지하면서 재정 또한 그 손에서 쥐고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 오는 분들의 말은 한결같이 "그 분이 그럴 줄 몰랐다"거나 "그 분이 처음에는 안그랬다"는 것이다. 특정인을 신뢰했고, 맡기면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하는 그 마음이 가장 위험했던 것이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신뢰한다는 명목하에 교회 일을 방치했다가 큰 코 다쳐서 울며 땅을 치는 것이다. 큰 함정이지만, 누구나 쉽게 빠질 만한 것이다.

가장 투명하게 사용할 것 같은 교회 재정이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을까?

교회재정건강성운동에서는 2005년 12월부터 2006년 4월까지 46개 교회 결산서와 23명의 재정 담당자들이 작성한 설문지를 수집하여 2006년 8월 10일, '한국교회 재정 운용 실태 조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조사를 통해 문제라고 파악한 부분을 발표한 2006년 재정 조례를 시작으로 교회재정건강성운동에서는 계속해서 교회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재정 세미나, 실무자 교육 등을 통해 매년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 1-교회 내 재정에 관한 규정, 즉 회계 처리의 기준이 없다

23개 교회 중 17개 교회(74%)에서 정관을 가지고 있다고 답하였으며, 그중 14개 교회의 정관에 재정에 관한 규정이 있으며, 1개 교회는 정관 없이 재정에 관한 규정만 있다고 답하였다. 회계 처리의 기준을 무엇으로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6개 교회만 정관 규정에 따른다고 하였으나, 정관에 있는 재정 규정은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세부적인 규정이라고는 볼 수 없다. 3개 교회(13%)는 교회와 무관한 기업 회계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8개 교회(34%)는 상식에 의존하여 처리하고 있었다. 교회 회계 기준의 정립이 시급하다.
-> 교회재정건강성운동 재정 조례 자료 참고

문제 2- 예산 제도나 예산 설정의 기준이 없고, 통제가 불가능하다

23개 교회 중 18개 교회(78%)에서 예산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중 8개 교회만 예산 설정을 위한 지침을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 교회는 예산 제도가 없거나 예산 설정의 기준이 없는 상황이다. 예산 제도가 없거나 예산 설정 지침이 없다는 사실은 교회가 무엇을 위하여 재정을 집행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이전 년도 결산 내역에 준하여 집행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경우 상황에 따라 특정인의 자의적인 결정에 따라 비정상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비정상적인 재정 운영을 방지할 장치가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
-> 교회재정건강성운동 2009년 교회 재정 세미나 '예산의 정석' 자료집 참고

문제 3-재정 담당자들의 자질 및 교육

23개 교회 중 7개 교회의 재정 담당자(30%)만 회계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답하였으며, 재정 담당자의 평균 재임 기간은 2~3년(65%)이며, 10년인 교회(1개)도 있었다. 2개 교회(8%)만 담당자를 위한 내·외부 교육을 실시하며, 담당자들은 주로 인수인계 절차에 의하여 업무를 파악(56%)하나, 회계 처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신임 담당자가 인수인계만으로 담당할 업무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받았다고 할 수 없다.

또한 18개 교회(78%)가 업무 인수인계 처리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인수인계를 한다고 하더라도 담당자의 상식에 의한 인수인계이므로 후임자가 그 내역을 충분히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문제 4-회계 처리 프로그램

23개 교회 중 9개 교회(39%)가 교회 관리용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으며, 4개의 교회는 복식부기용 프로그램을, 5개 교회는 단식부기용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나머지 교회는 엑셀 또는 워드를 사용하는 수작업 방식으로 결산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메모 형식의 비망 기록으로 관리하고 있다. 비망 기록은 변동 내역 관리 등 기록의 연속성을 확보하지 못하므로 교회 재산 관리에 취약하다.

문제 5-자산 관리 기능의 부재(단식부기의 한계)

대부분의 교회가 단식부기에 의한 수지결산서를 보고서로 작성하고 있으며(82%), 1개 교회만 대차대조표를 작성한다고 답하였다. 모든 교회가 수입·지출 항목을 집계한 수지결산서 개념의 보고서를 만들고 있으나, 수지결산서의 가장 큰 단점은 자산과 부채의 실재성과 현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자산의 취득 또는 적립을 모두 지출 항목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이러한 회계 처리로는 현재의 취득한 재산 관리 또는 적립한 재원을 정확히 또는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게 된다.

많은 분들이 문제 1번부터 4번까지는 쉽게 이해하실 것 같으나, 단식부기와 복식부기 부분에서는 용어도 아리송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복식부기까지 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노트북을 구입했다면, 단식부기에서는 노트북 구입으로 지출 처리하여 엑셀에 기장하면 끝이다. 그 후에 그 노트북이 있는지 없는지, 누가 가져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복식부기로 관리할 때에는 노트북 비용이 자산으로서 대차대조표 비품 항목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파악이 가능하다.

다수의 상담 사례에도 나타나듯이, 복식부기로 보고되지 않으면 성도들은 우리 교회에 빚이 어느 정도인지 알 길이 없다. 서울C교회처럼 목사가 일방적으로 교인들도 모르게 대출 금액을 속여도 확인할 길이 없다. 목적이 있어 따로 보관하고 있는 돈에 대해서도 누가 가져가도 알 길이 없게 된다. 내역을 고의로 누락시키는 경우에 그 내역을 찾기가 어려운 데다 전체 교회 재산의 증감 상태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곤란하다.

복식부기 예찬

위의 내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현재 교회개혁실천연대의 경험을 통해 설명해 보겠다. 개혁연대도 2005년 나눔과셈 회계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전에는 엑셀을 통해 회계 통계를 냈다. 그때는 단체가 결성된 초창기이기도 했고, 단체 결산 규모도 지금보다 현저히 작았다.

그러나 회계 프로그램 도입을 하니 단체의 회계 실무 능력이 월등히 높아졌다. 계정 과목 용어의 정리와 사용 범위를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었고,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운영 성과표, 수지결산서, 자산/부채/순자산으로 보이는 대차대조표를 통해 단체의 재정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으며 보고하기에도 쉬워졌다. 회의에서는 이런 재정 현황을 파악함으로 어떤 사업을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복식부기는 거래의 이중성과 대차 평균의 원리에 따라 하나의 거래를 왼쪽 차변과 오른쪽 대변에 이중 기록하는 회계 기록 방식으로, 자기 검증 기능이 있기 때문에 회계상에서 나올 수 있는 오류를 줄일 수 있었고, 오류가 나더라도 어디에서 잘못됐는지 짚어낼 수 있었다.

이처럼 복식부기는 교회 전체 자산의 규모, 부채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어 재산 관리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가질 수 있고, 교회 재정을 정확히 판단하여 교회 내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도움이 된다.

투명하게 보여 주고자 하는 마음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조적 장치가 동시에 필요하다

첫째는 교회 재정에 대해 교회는 성도들에게 투명한 보고를, 성도는 교회에 적극적인 요청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도 목회자의 정직한 품성만을 믿고 거의 목회자와 당회원들이 하자는 대로 성도들이 따라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성품에만 의지하기에는 보호 장벽이 약하다. 성도는 교회의 일을 '신뢰'라는 이름으로 어느 누구에게 떠넘길 것이 아니라, 내 집 장부 보듯 교회에 불필요하게 새는 돈은 없는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투명한 재정 관리는 요즘 같은 시대에 오히려 교회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며, 건강한 교회라는 자부심까지 선물로 준다. 사회에서는 이보다 더한 보고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교인들이 왜 교회에만 오면 믿음이라는 이유로 바보가 된단 말인가? 좋은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 그냥 넘어가다가는 큰 코 다친다.

둘째는 재정 관리 프로그램을, 즉 복식부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재정을 공개하고자 하는 착한 마음이 있어도, 보고서가 전체를 보여줄 수 없다든지, 재정 담당자가 작업하기 어려워서도 안 될 것이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도 재정 담당 집사님이 엑셀로 교회 돈을 관리하는데 잘 맞지 않아 고생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회계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은 재정 담당자가 기록하기에도, 자료를 보고하기에도, 자료를 받아 보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편하다. 또한 언제 어디서든 성도들이 프로그램 로그인을 통해 자신의 헌금 내역을 확인할 수도 있다. 전산화되어 있으니, 연말에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할 때에도 오류가 없다. 물론 초기에 프로그램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교회 내에서도 일정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이러한 장치 없이 투명하게 재정을 관리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교회재정건강성운동에서 하는 활동이 아직 소속 교인들에게 장부조차 보여 주기 꺼려하고, 재정 보고를 PPT로 하는 한국교회 현실 앞에서 너무 큰 요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꺼이 투명한 재정 공개 흐름에 동참하려는 의지가 있는 교회나 목회자, 성도들이 분명히 존재하니 그들을 더욱 힘써 돕고자 하는 것이다. 계속적인 연구와 개발 끝에 '재정 조례'도 발표했고, 재정 담당자들을 교육할 수 있는 재정 세미나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교회를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이제 교회는 이러한 시스템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기꺼이 투명하게 모든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마음과 복식부기의 시스템이 뒷받침된다면 더욱 깊은 신뢰 속에 모든 교회 문제의 중심인 재정 문제에서 자유롭게 될 것이다.

김종미 / 교회개혁실천연대 실장

재정의 투명성은 교회 건강성의 척도
신뢰받는 교회, 정직한 교회가 되는 길은 재정 공개에서부터

개척 당시에 교회 재정 공개에 대하여 마음을 먹고 그 실천 방식에 관하여 선배들에게 문의를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성도들이 부담을 느낀다. 둘째, 재정에 있어서 자유롭게 집행할 수 없다. 셋째,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유가 그럴듯하였습니다. 개척을 해 본 이들은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재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실에서 적용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공개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타 교회 성도가 신앙 상담을 요청하였습니다. 교회에 대하여 많은 실망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많은 아픔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짧은 상담이었지만 내용 대부분은 교회 재정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교회의 헌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재정에 관하여 질문하면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너무 힘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 한 사람으로부터 동일한 한탄을 듣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이곳저곳을 통하여 들려오는 한국교회의 아픔 가운데 재정 문제가 많은 부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면 반드시 재정 문제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진리의 싸움은 사라지고 재정에 대한 진흙탕 싸움만 남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재정에 대한 생각들을 더욱 굳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개척한 첫 달부터 교회 재정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공개하였습니다. 성도가 있든 없든 교회 재정에 관하여 투명하게 관리하고 정직하게 사용하고 공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정관을 재정하였습니다. 교회 헌법이 있지만 헌법에 없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정관을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정 원칙과 교회가 분란이 혹 일어난다 하여도 개인적으로 재정을 사용할 수 없도록 작성하였습니다. 동시에 매월 첫 주에 재정을 보고서로 작성하여 공개하였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교회 재정을 공개하고 보고하는 것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오히려 교회는 건강하였고, 성도들은 교회와 목회자를 신뢰하였습니다. 특히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헌금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회계 시스템인 나눔과 셈은 교회를 더욱 신뢰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2년 동안 최호윤 회계사의 자원 봉사를 통하여 외부 예·결산 감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2년 동안 배운 방식대로 자체 감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작은 교회이기에 재정이 얼마 되지 않지만 정직하고 투명하게 사용되는 것에 대하여 성도들은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회 성장에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오히려 교회가 건강하게 자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재정의 건강을 위하여 교회는 좀 더 적극적인 행보를 하였습니다. 바로 목회자의 세금 납부였습니다. 세간의 논란과 관계없이 교회는 이 일을 실행하였습니다. 지금은 많은 도움이 있지만 신고할 당시에는 세무서 직원들조차 목회자의 세금 납부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매우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기윤실과 함께 공조하므로 무난히 신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재정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골칫거리인 목회자의 퇴직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단기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어서 장기적인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파트 사역자들까지 건강보험료와 함께 국민 연금을 지출하였습니다. 당장은 잘 보이지 않지만 이들의 사역이 30~40년이라고 한다면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교회는 개척을 하여서 지금까지(8년) 재정의 투명성과 정직성에 대하여 달려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였던 모습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건강하였고, 신뢰가 쌓였으며 급속한 성장은 없지만 꾸준히 자라났습니다. 더구나 재정 원칙으로 인하여 구제와 선교 그리고 지역을 섬기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일이 쉽게 되지 않고,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교회는 자발적 불편을 살아 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도 힘들고, 직분을 받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서 많은 이들이 왔다가 견디지 못하고 떠나갔지만 교회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더디지만 자라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교회의 재정을 공개하고 투명하게 사용하는 것은 교회의 교회다움을 보여 주는 일입니다. 재정에 대한 정직함은 교회를 거룩하게 만들어 줍니다. 정직한 재정 사용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또한 재정의 공개는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돈을 사랑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전하고 있다면 재정의 투명성은 열매로 나타납니다. 사실 신뢰받는 교회, 정직한 교회가 되는 길은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시대는 교회를 향한 밖의 시선이 따갑습니다. 이러한 때 교회의 거룩함을 보여주고, 교회의 건강함을 나타내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재정의 투명성은 교회의 건강성을 보여 주는 작은 시작입니다.

신동식 / 빛과소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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