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결산기가 끝나면 각 교회마다 공동의회에 결산보고와 감사보고를 한다. 교회마다 감사가 보고하는 내용은 보통 다음과 같은 상투적인 표현으로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본 감사인은…별첨 수지결산서(또는 재무제표)를 감사하였으며…. 별첨 수지 결산서는…(중요성의 관점에서) 적정하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감사보고 내용의 의미를 곰곰이 뜯어보면 감사의 성격이 결산서가 있는 그대로 표시하고 있는가를 검토하는 것이 주 관점이다. 이는 감사(監査, audit)라는 업무 영역이 기업회계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기업회계 관점에서의 감사의 의의가 그대로 교회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특정 조직(기업 또는 단체)의 재무제표가 일정한 기준(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된 회계 원칙)에 맞추어 적정하게 표시하고 있는지 여부를 주주 및 기타 이해관계자에게 알려주는 방식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실시하는 결산감사는 솔직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감사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째는 서로 얼굴을 붉힐 수도 있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 서로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가볍게(?) 형식적인 절차로 감사를 마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교회 감사의 성격을 주식회사 외부회계감사 관점에서 보게 되므로 감사인이나 피감사인이나 모두 부정 적발 관점에서 감사를 보게 되면 감사인은 공격적이 되고 피감사인은 방어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인회계사인 직업특성상 본인도 지금까지 위와 같은 표현으로 교회 또는 비영리단체의 감사보고서를 작성해왔다. 하지만 시간과 횟수가 거듭될수록 교회 감사는 '적정하다' 또는 '부적정하다'의 관점에서 감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정 감사는 적정성 평가의 차원을 넘어서야

기업 결산서는 주주들의 자본(기업)운영을 위탁 받은 경영진이 활동한 경영 결과이므로 자본 운영을 의뢰한 위탁자(주주)들의 모임인 주주총회에서 보고를 하는 것은 의미가 있겠지만, 교회 재정 운영을 교회에 맡긴 주인은 하나님이므로 교회 재정 운용의 결과는 원칙적으로 하나님께 보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교회는 재정을 관리할 청지기 책임을 지고 있으므로 청지기직을 부여한 하나님에게 보고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결산보고는 단순히 '재정 수입과 지출이 이러이러하여 차기 이월액이 얼마이다'라고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재정을 관리할 책임을 위임 받은 청지기로서 1년  동안 하나님의 손길로 맡겨주신 재정의 규모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신 하나님나라에 대한 평가와 인도하여 주심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즉, 재정 결산보고는 재정에 관한 추수감사와 같은 의미다.

그러기에 재정결산보고의 시간은 재정 담당자만의 발표 시간으로 끝나면 안 된다. 발표는 재정 담당자가 하지만 교회 공동체 전체가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교회에 맡겨주신 책임에 대하여 공감하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어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이 맡겨주신 재정을 청지기로서 관리한다는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교회 재정 결산에 대한 감사 작업은 결산서의 적정성 여부를 평가하는 감사(監査)의 차원을 넘어서 교회를 통하여 이루신 하나님 손길에 대한 감사(感謝)한 일들을 찾고 정리하는 시간이 되어야만 한다.

감사보고를 청지기적 사명을 공유하는 시간으로

교회 재정 결산과 감사에 대한 의미가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차원을 넘어서 교회를 인도하신 하나님 은혜를 고백하고 감사드리는 절차로 바뀔 때 결산과 감사는 지루한 시간이 아니라 은혜를 감사드리는 축제의 시간이 될 수 있고, 잘잘못을 따지는 지적과 방어의 입장이 아니라 재정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누가 더 많이 찾아내느냐의 즐거운 작업이 되고, 그동안 실수하였거나 잘못한 부분들을 찾아서 개선해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재정 담당자들만의 노력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재정에 대한 교회의 청지기적 역할을 인식할 때에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감사보고서의 결론만을 발표할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1년 동안 재정을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감사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재정 운용 결과(결산서)의 의미를 찾아서 공동체에 설명하고 같이 감사드리는 내용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또한 교회가 아픔 속에서 개선해가는 과정도 감사보고에 포함하여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가고 있는지 교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같이 알고 같이 고민하며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표시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교회마다 결산·감사 보고만 할 것이 아니라 1년 동안 교회가 활동한 결과를 정리한 문서 형태(예:백서 형식)로 전 교인이 공유하는 가운데 한해를 마무리하는 형태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제사장이 제물을 관리하던 구약 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교회 공동체가 드려진 헌금(재정) 관리에 대한 책임을 부담한다. 교회의 재정 관리가 소수의 특정인에게 의해서 운용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청지기적 사명으로 이를 같이 고민하고 감사할 때에만 감히 교회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재정을 관리한다고 말할 수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