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그뿐인가. 요즘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1위가 부자가 되는 것이고, 2위가 연예인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이 사회는 돈 많이 버는 것이 모든 이들의 소망이 되었다. 아이부터 해서 어른들까지, 그리고 교회마저도 이 돈의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참 아이러니다. 돈을 더럽다고 여기고,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또 돈이 최고라고 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 헌금이 거룩하다면 쓰임까지도 거룩해야 한다. 돈을 헌금으로 드리는 것이 신앙의 행위라면, 그 헌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는 것도 신앙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돈에 대한 교회의 시각은 어떤가. 이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헌금이라고 해서 돈을 그 무엇보다도 거룩하게 본다. 하나님께 드린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헌금 기도를 들어 보면 이러한 시각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서 거룩한 제물로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러한 제물을 '흠향'이라는 유교적 제사 용어를 갖다 붙여 거룩하게 만든다.

그런데 돈의 흐름이나 쓰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마치 더러운 것을 대하는 유교 양반의 자세와 비슷하기도 하고, 그런 것을 따지면 속된 것처럼 치부하기도 한다. 즉 돈을 내는 것은 거룩하게 생각하면서, 그 쓰임에 있어서는 그 거룩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 때문에 교회는 항상 돈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돈을 모으는 것에는 각종 이름을 붙여서 다양하게 모으고, 이름을 공개하여 격려하고, 그래프까지 그려 붙여 독려한다. 요즘이야 그런 이야기를 듣기 힘들지만 과거에 한국교회가 열심이 넘칠 때는 집을 팔았다는 분들이나 돈이 없어서 금가락지를 뽑아서 드렸다는 '전설'들도 있었다. 헌금을 모으고, 드리는 것에는 이렇게 열심인 곳이 우리 한국교회이다.

그런데 그렇게 드린 거룩한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회계 보고를 요구하는 사람도 없고, 돈의 쓰임을 합리적으로 보고하는 교회도 드물다. 나는 드렸으니까 신앙인으로서 그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돈이 쓰이는 것은 목사와 장로들이 알아서 하겠거니 한다. 그러다 보니 돈이 쓰이는 곳에 견제나 확인의 절차가 없는 것이다.

내 나이 오십이 가까워 오지만 공금을 썼던 것은 대부분 교회에서였다. 학생회에서 예산을 타 쓰고 나누었던 것이나 전도사와 목사로서 재정을 다루었던 것이 다였던 것이다. 삶의 환경이 보통 그랬으니까 당연하다. 그리고 교수 생활을 하는데, 평교수의 경우는 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접할 기회가 없다.

최근 학교의 행정에 관여하게 되었다. 처음 돈과 관련된 행정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참 많이 놀랐다. 교육을 위해 쓰여야 할 예산이 허투루 쓰이지 않게 하기 위해 학교에서는 이중, 삼중의 견제와 감시의 시스템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즉 돈의 쓰임을 계획하는 이, 돈을 직접 관장하여 내주는 이, 그리고 직접 예산으로 쓰는 이가 다르게 해 놓았다. 그러니 삼중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것이다.

헌금이 거룩하다면 쓰임까지도 거룩해야 한다고 본다. 돈을 헌금으로 드리는 것이 신앙의 행위라면, 그 헌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는 것도 신앙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또한 교회 역시 헌금을 하라고 광고하고 독려했다면, 그 돈의 쓰임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것이 바른 응답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교회 안에서 돈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버리고, 돈을 통해 교회가 더욱 거룩하여지기를 기대해 본다.

조성돈 /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사회학 교수